이스트빌리지의 귀환 - 도산공원, 권숙수
2년 전이던가,
아니면 3년 전이었나
이태원에 이스트빌리지라는 한식 비스트로가 있었다
응원하던 가게였으나,
결과적으로 문을 닫았다
셰프님이 운영하던 블로그를 통해 접한 소식으론,
그 때의 가게를 접은 뒤 한동안 기업에서 일을 하셨지 아마
그리하여 갈 일 없어진 그 블로그로
어찌어찌 유입되었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몇개의 새로운 포스트가 올라와 있었고
새로운 가게를 준비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니, 이미 준비는 끝났고
7월의 시작과 함께 오픈했다는 소식
마침 여윳돈이 나올 즈음이라
언제 가보나 재볼것 없이 토요일 점심으로 예약했다
코스의 시작은
주안상이다
작은 크기로 재현된 책상반에
시작주 한잔과 주전부리가 놓인다
문어우족편과
감자칩,
토마토스넥과
새우두부찜
그리고 이스트빌리지 시절의 그 육포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감자칩과 육포는 무척 맛있게 먹었다
육포같은 경우 바짝 말린 그야말로 저장식의 질감인데
죽력고에 재웠기 때문인지 입가로 가져올때 맡게 되는 고릿한 향이 잡혀있는게 좋았다
반면
문어우족편과
새우두부찜의 경우,
재료가 갖는 특징이 전달하기에는
너무 작은형태로 만든 바람에
어떤 맛이나 향을 잘 모르겠더라
이 주안상은,
한식코스라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꽤 멋진 도구였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라면 아무래도 고민하게 만든다
테이블이라는 것이 식사를 하기에 적당한 높이기 마련인데
그 위에 다시 다른 높이를 얹음으로 불편을 야기한다
후에 메인으로 나오는 솥밥과 더해서,
권숙수의 한식컨셉은 어떤 풍경을 재현하곤 하는데
이것이 종종 쾌적해야하는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경험을 방해하고 만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후 다시 언급하겠다
두번째로 만나는 요리는
성게알 셀러드다
콩카세한 참외 위에 성게알을 올렸고
애플민트 잎으로 상큼한 향을 더했다
드레싱으로는 올리브오일과 바나나식초등을 섞어 만들었다고
이때부터 두가지 술이 페어링 되었다
스파클링 와인 한 잔(아쉽게도 와인의 이름들은 외우지 못했다)과
매실원주
와인의 경우 오히려 시드르에 가깝다는 인상이 있어,
애플민트 향과 상승효과를 노린것으로 보였다
살짝 새콤한 맛은 식전 입맛을 돋우는 역할로도 좋다
반면 매실원주의 묵직한 단맛은,
성게알이 길게 남기는 특유 쓴맛을 눌러줄 수 있어
후반에 잘 어울린다
세번째로 민들레국수가 나오고,
한켠에는 솥밥이 준비된다
작은 사이즈로 재현된 가마솥에 생쌀과 모시조개 육수로 밥물을 붓고
필레를 뜬 뒤 구운은어를 얹었다
나무뚜껑을 닫고,
솥 밑에 고체연료를 태우기 시작함으로써
코스의 과정중 한켠에선 가마솥 풍경이 재현된다
한쪽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 밥짓는 냄새가 퍼지면
특히나 고소한 은어구이 향이 더해져 멋진 연출이 되는데
다만,
그 옆으로 와인잔이 열기에 영향받는건
아무래도 아쉽다
각 요소의 배열도 생각해봐야 한다
민들레 국수로 다시 돌아가
이야기를 해보면,
생각외로 맛있어 놀랐다
아무래도 민들레가 들꽃이다보니,
비빔국수에 어울리는 채소로서 민들래 잎을 넣는다면
투박한 맛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왠걸 쌉쌀하지만 떫지 않은 이파리는 오히려 상추보다 점잖았다
소면대신 카펠리니를 사용했고 파스타답게 삶았다
들기름 향은 고소하고 은은해 과하지 않았고,
구운 잣은 다른 종류의 고소함을 가지고 길게 여운을 남긴다
페어링은 성게샐러드 때 제공된 것에서 예까지 이어지는데,
매실원주가 성게셀러드에 잘 어울렸다면,
와인은 이쪽에 더 잘 어울린다
그도 그럴 것이, 고소한맛-쌉쌀한 맛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와인으로 무게감을 덜어주면 균형이 산다
네번째로 양고기 군만두가 나오는데
이 메뉴의 만족도가 가장 낮앗다
양고기 특유 향이 진하게 나는 소는
뭉치지 않고 부드러웠지만,
문제는 만두를 지질 때 만든 녹말 날개에 있었다
한입 사이즈인 만두의 본래 크기를 불필요하게 키운데다,
딱딱하고 기름까지 머금고 있다
너무 크고 두껍게 형성된 탓인데 없느니만 못했다
솥밥 준비가 거의 다 되어갔고,
입안을 헹구기 위해 셔벗이 제공되었다
샐러리와 청사과를 이용해 만든 셔벗으로,
양고기의 진한맛을 무마하는데 적당하다
솥뚜껑이 치워지고
밥과 함께 먹을 찬이 나왔다
페어링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었는데,
가장 맛있게 마신 것 중 하나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솥밥을 지을 때 밥물과 은어구이로 감칠맛은 충분히 더해진 상태기 때문에
밑반찬은 구태여 필요치 않았고
이 맛좋은 와인만 곁들이는 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디저트로
오미자 화채,
마지막으로 쁘띠프루까지 제공되며
코스가 마무리된다
디저트와인은
청감주가 제공되는데
노란 꽃향기가 도는 꿀물을 마신듯
달콤한 맛이 훌륭했다
어쩐지 잔소리를 잔뜩 늘여놓은
후기가 되어버렸는데,
관심을 많이 갖고 지켜보는 곳이라 할말이 더 많았는지 모르겠다